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

나는 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져주는 듯이, 내가 잘못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듯이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쉽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로 알아듣고 넘어가자는 태도로 성숙하게 ‘그땐 그렇게 말하셔서 이런 뜻인 줄 알았어요’, ‘알겠어요, 그건 제가 오해한 게 맞는 것 같네요’.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럼 적당히 체면을 깎지 않는 선에서 ‘나는 잘못을 인정했다’는 느낌도 내면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근데 난 그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 찌질해 보인다. 물론 나도 쫄리는 순간엔 저런 화법을 하곤 하는데 그러고 나면 집 오는 내내 찌입찝하다. 아니, 내가 왜 착각했는지 그 착각에 상대방이 기여했는지 정리하는게 중요한가? 왜 오해를 한 게 맞는 것 같은가? 오해면 오해지 오해한 것 같다니. 내가 잘못했다. 그냥 그렇게 끝내면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가.

그런 후회를 하고 나면 한동안은 진짜 별것 아니어도 그건 내가 오해했다. 내 잘못이다. 내 논리가 틀렸고 네가 맞았다는 얘길 확실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의 무식이 드러날 때도 종종 생긴다. 새로 입사하면 신규 직원에게 체크리스트를 주면서 ‘자, 이 중에서 모르는 거 체크하세요.’ 하지 않고 다 알겠거니 하면서 바로 일을 시키기 마련이다. 그럼 사실 잘은 모르는데 다 아는 척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 꼭 생긴다. 내 경우에는 준법 검토가 그랬는데 이 정도로 지켜야하는 것이 많은 제품이 처음이라서 언제 어떻게 어떤 검토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뭔가 놓친 일이 생겼을 때 (나도 체면이란 게 있으니까) ‘아, 제가 너무 정신없어서 그 과정을 놓친 것 같습니다’라고 해도 되는데 꾹 참고 ‘제가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몰라서 놓쳤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바빠서 못했다고 하는 건 그렇게 얄미워도 몰라서 못 했다고 하면 살짝 한숨 쉬고 알려주게 되니까.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감정이 답답함이다.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같은 시원하지 못한 대답. 그러니까 나라도 이 세계의 답답함의 총량을 늘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답답함보단 쪽팔림을 감수하고 다음 주에도 ‘잘못했어요’ ‘내가 틀렸어요’ ‘그건 좋아요’ ‘그건 싫어요’를 외치면서 살자고 마음을 잡아본다.

이 마음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던 영상과 글
The power of vulnerability Brené Brown | TED
영화 매기스 플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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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처음은 욕심만큼 못해

잘 해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욕심만큼 잘 해내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내 욕심은 100에 있는데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80정도 성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주 인터렉션을 매끄럽게 잘 만들고 싶은 화면이 있었다. 레퍼런스도 엄청나게 찾아보고 계속 파고들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결론은 허무하게도 복잡한 효과가 들어가지

회사 안의 내가 행복해야 회사 밖의 나도 행복하다.

참여하는 디자이너 스터디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책이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지난 12월에는 연말답게 1년의 디자인 작업을 돌아보며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직장인으로서 누구나 빠지기 쉬운 순환 고리를 알게 되었는데 흐름은 이렇다. * 의욕적으로 회사 일을 열심히 하고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 하다 보면 내 선에서

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