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회고 - 창업, Prep

11월 24일. Prep팀은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함께 창업을 하기로 모인 후 1년 만의 일이었고, 내가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우리가 뛰어든 아이템은 아이패드 문제집이었다.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태블렛 PC를 가지고 있고 공부에 활용하고 있었다.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으로 노트 필기를 하고 인강을 듣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문제집 마켓 플레이스는 없어서 각자가 실물 문제집을 스캔 맡기고 pdf를 떠서 굿노트에 불러와서 푸는가 하면, 네이버 카페에 문제집 해적판 pdf가 돌아다녔다. 이걸 보고 우린 새로운 현상이 생성되고 있는데 마땅한 플레이어가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아이패드 문제집이 있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빠르게 검증을 시작했다. 이것이 7월의 일이다.

검증은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했다. Tally로 설문지를 만들어서 우리가 시도하려는 제품의 프로토타입 이미지를 붙이고, 제공하려는 문제집과 가격에 대해 적은 뒤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 설문을 받았다.

초기 검증을 위해 사용한 Tally 설문지

허접하기 짝이없는 광고인데다가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요청했음에도 꽤 많은 응답이 들어왔다. 3일 만에 22명의 연락해볼 수 있는 실제 고객이 생겼다. 이걸 실제 서비스 광고라고 가정했을 때 ROAS 2.7라고 내부적으로 계산했다. 시도해보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실제 서비스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서비스 이름도 정했다. 아이패드 문제집 ‘Prep’이었다.

8월과 9월에 걸쳐 2달 간 고객을 만나봤다. 응답을 했던 고객부터 팀원들 부모님 친구의 아들, 딸, 친척까지 지인 인터뷰를 했고, 모든 지인 찬스를 쓴 다음에는 카페에서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이 보이면 무작정 물어보기도 하면서 정말 간절하게 제품을 만들었다. 고객을 만나볼 수록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뾰족해졌다.

  1. 자동 채점을 해주고 풀이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2. 유형/모의고사형 문제집을 따로 사지 않고 하나로 해결하는 것
  3. 문제집을 다 들고 다니지 않도록 가방을 가볍게 해주는 것

4 Risk framework에 따르면 명확한 Pain이 있는 Valuable한 문제였고 우리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Feasible한 문제였다. 하지만 Usable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Prep으로 문제를 풀기에 필기감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필기감을 굿노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단 몇 주 만에 필기 앱으로 굳건한 1위에 자리잡고 있는 굿노트의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해냈다. 10월에 출시할 준비를 거의 마쳤다. 마지막으로 고객들을 만났을 때 반응을 보고 진짜로 이걸 쓰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진짜 좋아요. 이거 굿노트 가격이면 쓸 거 같아요!” 진짜 듣고 싶은 말이었고, 진짜 막막해지는 말이었다. 굿노트는 월 구독으로 연 14,000원 가량이다. 월로 환산하면 1,000원 조금 넘는다. 이 말은 “실전 모의고사 문제집 서비스로는 일부 고객에게 유료로 판매할 수는 있겠으나 1년 안에 $1M ARR을 달성하는 가파른 성장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Bottom up으로 시장을 추산했을 때, 국어를 공부하는 고등학생 중 10%가 쓴다고 가정하고 넉넉하게 매출을 추산해봐도 1년 안에 매출 10억원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장 발생하는 매출에 집중한 이유는 Prep같은 서비스는 VC들이 좋아하지 않고, 부트 스트래핑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교육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10년 뒤 시장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구매력도 줄어든다. 투자도 어렵고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밸류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왜 이런 시장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냐고 하면, 첫째로 디지털로 전환되지 않은 시장 중에 가장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일단 성장 엔진이 만들어지고 나면 다른 시장으로도 확장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Prep이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서 아이템 피봇을 시도했다. 짧게는 3일, 길게는 7일만에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 인터뷰하며 아이템을 검증했지만 충분히 큰 시장에서 고통이 큰 문제를 찾지 못했다. 꽤 유효한 사용자 문제는 몇 가지 발견하고 검증했으나 밴처 스케일의 문제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11월을 맞이하며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것부터 바꿀 지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해볼 것은 정말 좋은 문제인지 다각도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문제 정의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 매우 많다. 아무리 빨리 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해본다고 한들 만들지 않고 테스트해보는 것에 비해 훨씬 느리다. 제품을 만들기도 전에 문제 자체를 검증해 볼 방법을 찾을 것 같다.

Prep을 하면서 문제가 있는지, Pain이 큰지 확인하고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넘어갔는데 그때 빠진 검증이 많다. 얼마나 자주, 많이 겪는 문제인지 그 문제가 계속 커질 것 같은지 등 6개의 프레임 워크를 기준으로 하나씩 유효성을 검증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바꿀 것이다. 돌이켜보면 앞으로 잘 될 것 같아서 최적화한 문제가 많았다. 아직 사용자가 하나도 없는데 확장성을 고민하며 개발할 것을 늘린다거나, 나중에 붙을 기능을 상상하며 복잡한 서비스 구조를 그린 것도 있었다. 그땐 그게 지속적으로 빠르게 달리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니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런 쓸모 없는 확장성 고려는 항상 시간을 더 잡아먹는다. 시간은 다 검증 기회니 오지 않을 확장 때문에 검증할 기회를 날린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은 문제인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런 아이템으로 창업하긴 좀 그렇지 않아?’, ‘기왕이면 좋아보이는 아이템을 하고 싶어.’ 같은 욕심은 정말 경계해야한다. 오히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인사관리, 세금 신고같은 서비스가 혁신을 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연말까진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팀원들과 헤어짐을 말하며 정말 속이 쓰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쓰라림을 달래며 계속 멀뚱멀뚱 서 있을 힘도 여유도 없다. 일단 결정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1년 뒤에 내가 다시 이 글을 읽고 그때 Prep을 멈추고 새로운 아이템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길 바라며 긴 회고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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