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기대하지 않는 조직의 디자이너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디자인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팀에 속해 있다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이 가져올 임팩트에 대해 신뢰가 낮다면 모든 것이 결정된 뒤에 디자이너에게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이 공유되고 그렇기에 디자이너의 자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디자이너가 뭐라도 더 좋게 바꿔보고 싶어서 개선점을 계속 제안한다 해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 디자인이 비즈니스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문제의식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여러 번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다보면 겨우 나중에야 거의 (너무 거절해서 미안하니까) 들어주다시피 개선 사항이 받아들여진다.

이런 현상은 꽤 흔한 것 같다. 디자이너들과 커피챗을 해보면 위와 같은 상황을 겪는 디자이너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어려움은 ‘이 조직을 떠나야 하나’라는 깊은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고민에 너무 공감했지만, 마땅한 도움이 되는 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했던 말이라곤 ‘진짜 의지를 가지고 팀을 바꿔보세요’, ‘팀을 바꾸려면 작은 성공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해요’ 같은 속 시원하지 않은 말뿐이었는데, 최근의 경험들로 생각이 바뀌어 다시 적어본다.

지금의 나라면 디자인에 기대를 심어줄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 보자고 말할 것 같다. 디자인이 만들 수 있는 매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더 나은 것을 보여주면서 설득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뭔가를 그려냄으로써 진짜 멋진 것을 상상하게 하고, 팀을 꿈꾸게 할 수 있다. 팀이 Usable한 제품을 기대할 때, 디자이너는 Lovable한 제품을 그려내고 보여줄 수 있다. 이건 그리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2017년 Brian Chesky가 팟캐스트 Master of scale에서 Airbnb의 11 star framework를 소개했다. 11 Star Framework는 5성급, 6성급을 넘어 11성급 호텔의 경험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보는 것이다. 5성급, 6성급, 7성급 호텔을 상상할 만하다. 그보다 더 좋은 경험으로 넘어가면 상상하기 어렵다. Brian Chesky는 팟캐스트에서 공항에 도착했는데 일론 머스크가 나와서 그냥 ‘우리 이제 우주로 가는 겁니다’ 하는 게 11 성급 쯤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1 Star Framework의 핵심은 한 번이라도 11성급 호텔을 상상하고 이 경험을 어떻게 천 명, 만 명, 10만 명에게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모든 팀이 이 고민을 함께하는 순간이 디자이너의 매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꼭 11성급 호텔처럼 거창한 미래의 경험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아주 작게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주 작은 컴포넌트라도 평소에 우리 팀이 만들었던 수준이 3이라면, 4, 5, 10을 그려보는 것이다. 10을 보여주는 순간, 분명 어떤 개발자들은 너무 어렵겠지만 내 시간을 더 써서라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뒤에는 제품의 핵심 사용성을 끝판왕으로 그려본다거나, 시각적으로 이전과 다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 새로운 기술이 발 빠르게 대처해 우리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달라진 생각은 디자인에 기대가 없는 팀이라면 최고의 경험을 보여줌으로써 팀이 꿈꾸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우리 팀에서는 안 된다고만 생각했던 것을 해볼 수 있게 되고, 디자인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고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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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처음은 욕심만큼 못해

잘 해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욕심만큼 잘 해내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내 욕심은 100에 있는데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80정도 성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주 인터렉션을 매끄럽게 잘 만들고 싶은 화면이 있었다. 레퍼런스도 엄청나게 찾아보고 계속 파고들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결론은 허무하게도 복잡한 효과가 들어가지

회사 안의 내가 행복해야 회사 밖의 나도 행복하다.

참여하는 디자이너 스터디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책이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지난 12월에는 연말답게 1년의 디자인 작업을 돌아보며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직장인으로서 누구나 빠지기 쉬운 순환 고리를 알게 되었는데 흐름은 이렇다. * 의욕적으로 회사 일을 열심히 하고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 하다 보면 내 선에서

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