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시스템은 무엇을 돕는가

창업하고 여러 번 제품을 피봇하며 디자인 시스템 또한 여러 번 만들고 부쉈다. 디자인 시스템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적어본다.

초기 제품에서 디자인 시스템은 쉽게 부수기 위해 존재한다. 부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실패가 두렵지 않도록 돕는다

시스템이 있으면 나중에 한 번에 수정하기 수월하고, 모든 것을 본격적으로 수정하더라도 다시 쌓기에 빠르다. 부수기 위해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모든 것이 바뀔 것을 염두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으로 에너지를 쏟고 최대한으로 활용할 각오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유니크한 그래픽이다. 초기 제품에서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디자인 시스템은 정말 필요가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 필요가 없는데 하나는 우리의 제품이 정말 쓸모있는지 검증하는 단계라 얼마나 멋진지는 검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얼마나 멋진지가 우리 제품의 쓸모를 결정하는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면 정확한 검증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중요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적는다.

처음에는 우리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싶었다. 기왕이면 독특한 라운드, 눈에 띄는 디스플레이 타이포그라피, 유니크한 쉐도우 스타일 같은 것을 나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처절하게 피봇팅을 하면서 이런게 다 정확한 가설 검증을 막는 노이즈라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디자인이 예뻐서 쓰는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진짜 안쓰고 싶게 생기더라도 써야만 하는 제품이 훨씬 강력하다. 일부러 못생기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이걸로 절대 점수를 더 얻고 싶지 않았다.

그때 기존에 만들어져있는 디자인 시스템을 그대로 쓰는 것을 고려해보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장점은 명확했다. 아주 평범한 컴포넌트여서 특별하게 예쁘지도 않았지만 촌스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디자인을 너무 못해서 제품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도 막아줬다. 한마디로 디자인 시스템계의 유니클로였다. 검증을 위해서 이거면 충분했다.

제품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게 돕는다

초기에는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디자인 시스템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usable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Usable한 디자인은 사용자가 제품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수준의 디자인을 뜻한다. 너무 빠르게 만들려다가 엉성한 제품이 되어버리면 사용자가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수준이 된다. 즉, 사용자가 화면에서 정보를 제공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가설 검증도 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초기 단계-우리도 뭘 만들지 모르면서 만드는 단계-에서는 디자인 시스템은 제품을 부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너무 엉성하면 제품 가치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너무 엉망이지 않도록 똑똑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제품 초기 단계의 디자이너

제품 초기에 디자이너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대신 뭘 더 해야하냐고 질문한다면 새로운 제안이 있다. 창업 초기 팀의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은 차라리 효율적인 외부 시스템을 활용해서후루룩 뚝딱 해버리고, UX 전문가의 눈으로 경쟁사 제품을 리서치를 한다거나, 고객 인터뷰를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제품의 성공을 돕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매번 되뇌이는 말인데, 내가 디자이너라고 해서 꼭 디자인만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린 오케스트라가 아닌 재즈팀이니까, 지휘자가 없다면 피아니스트가 팀을 갑자기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부여된 역할을 넓게 해석하고 제품의 성공을 위해 뭘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해내는 것이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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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

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