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탁 친 맞는 말들

한 주간 자잘하게 얻은 지혜가 많아 정리해보려고 한다.


북마크를 멈추고 소화의 시간을 갖기.

새 회사에 두 달째, 난 계속 정보의 굴을 파고 있다. 이쯤 되면 히스토리를 다 파악했겠지, 싶었는데 모르는 게 또 나오고 또 나온다. 동시에 새로운 정보도 계속 생성되어서 계속 확장하는 지도를 외워야 하는 형에 처한 것을 아닐지 생각했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조금 비효율적이지만 스스로 정리하는 노트를 만들었다.

  • 이미 정리되어 있는 히스토리 내 말로 다시 쓰기
  • 잘 정리된 팀 백로그 다시 정리하기
  • 결과가 증명된 디자인 실험들 개인 페이지로 옮겨서 다시 정리하기

이제야 비로소 서서히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학습을 위한 끄적임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모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환경이 탄생하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그때부터 한 사람이 정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만 하는 방식으로 적히고 편집되었다. 언제든 정리된 문서를 볼 수 있는다는 안심에 내용을 소화하려고 하지 않고 북마크만 찍으면 땡이었다. 그러니 링크 지옥에 빠져버릴 수밖에.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데 뭘 내가 다시 쓰나, 허튼짓이다, 생각 말고 학습을 위한 끄적임의 시간을 갖자. 그래야 머릿속에 떠다니는 키워드를 가라앉히고 소화할 수 있다.

리스크가 없는 결정은 할 가치가 없어요

이번 주에 이 말을 듣게 되었다. 아하, 너무 맞는 말. 리스크가 없는 실험을 할 거면 가설을 왜 세우나. 다 가설이 아니라 정답인데. 이미 다 알고 있는 답으로만 제품을 만들면 실패할 일도 더 잘할 일도 없거니와, 모두가 똑같은 답을 보면서 제품을 만들기에 결국 모든 제품이 다 똑같아질 것이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도 커지는 것이 맞는 성장 방향이다. 규모가 10인 회사가 1 리스크를 견딜 수 있었다면 100이 되면 적어도 10 리스크는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오히려 규모가 커질수록 리스크를 더 회피하고, 예전엔 감당할 수 있던 것도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회사가 커지며 염증 수치가 올라갔기 때문이 아닐까. 염증 수치는 낮추고 자정 작용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작은 회사가 하지 못하는 더 큰 모험을 해볼 수 있다. 그게 큰 회사가 살아남는 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Done까지만 하는 사람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스타트업의 채용 페이지를 보면 십중팔구는 쓰여 있는 문구다. 나는 저 말을 굳게 믿어왔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Done까지만 잘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그다음 더 높은 기준으로 Perfect를 향해 가는 것도 도전적인 일인데, 그걸 노력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시작할 때는 Done is better than perfect가 맞지만, 일단 해냈다면 그다음은 Perfect가 목표다. 그 길도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

속도와 완성도, 가격과 품질, 맛있는데 건강한 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란 말은 너무 남용된다. 물론 둘 중 하나라도 잘하면 된다. 하지만 진짜 파괴력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이걸 다 해야 한다. 저렴한 데 맛있는 맥도날드, 맛있는데 제로 아이스크림, 예쁜데 값도 싼 가구 이케아.

사람도 마찬가지다 리더라면 인사와 실무를, 디자이너라면 기획과 그래픽을 모쪼록 다 잘하면 최고가 된다. 위에 적은 Done과 Perfect도 마찬가지겠다. 엄청 여러 분야에서 최고일 필요도 없다. 딱 두 가지 정도만 진짜 잘하면 파괴적인 제품, 사람이 된다. 역시 결국 다 역량의 문젠가.

역량과 담력의 밸런스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담력이 필요한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내가 머무는 영역에서 충분히 내 값을 한다 싶고 이제 뭘 더 할지 모르겠다면 역량이 아닌 담력을 키워야 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보거나,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거기에 해당한다.

서로가 성장을 돕지만, 밸런스 붕괴는 위험하다. 역량은 있지만 담력이 없다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것이고, 담력만 넘치는 경우 제 체급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지고 몸도 마음도 다치고 만다. 돌이켜보면 난 담력이 센 편이었다. 가끔은 성장했으며 가끔은 크게 데였다. 지금은 어떤가 역량이 센가, 담력이 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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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

나는 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져주는 듯이, 내가 잘못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듯이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쉽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로 알아듣고 넘어가자는 태도로 성숙하게 ‘그땐 그렇게 말하셔서 이런 뜻인 줄 알았어요’, ‘알겠어요, 그건 제가 오해한 게 맞는 것 같네요’.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럼 적당히 체면을 깎지 않는 선에서 ‘나는

규격에서 벗어나기

얼마 전에 이사했다. 이전 집과 주방 구조가 특히 달라 고민했다. 냉장고 옆자리에 김치냉장고를 넣을 만한 자리가 있는데 난 김치냉장고 안 쓰니까 그곳에 원래 쓰던 전자레인지 수납장을 놓으면 되겠거니 계획했다. 미리 폭의 크기를 재어보는 꼼꼼함까지 부렸는데 막상 가져와서 설치하니 애매했다. 폭만 맞고 뒤에 공간이 남았다. 30센티 정도.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뒤에

좋아서 쓰는 제품

이번 주말에는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이벤트인 다빈치 모텔에 다녀왔다. 언제부터 현대카드를 썼더라. 대학생 때 외국 디자인 서적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가고 싶어서 현대카드를 만들었다. 그땐 어렸을 때라 연회비가 가장 싼 카드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고메위크에 관심이 갔고(번번이 예약은 실패했지만), 예쁜 카드 플레이트를 갖고 싶었고, 코스트코가 필요했고,

똑똑한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똑똑함이라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다. 제품 전략을 세우기 위해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한 자료, 빈틈없는 경쟁사 비교를 몇 페이지에 나눠 설명을 듣고 있으면 너무 많은 숫자와 그래프에 압도당해 그걸 잘 이해하는 사람이 똑똑한 디자이너인 것 같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래서 해결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