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애증

몇 년 전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라는 프랑스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나는 일 욕심이 많아서인지, 직업의 희로애락을 다루는 오피스 물을 모두 재밌게 보는 편이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의 바보 같은 실수, 무모한 열정, 가끔의 희열에 나도 모르게 힐링 받는다.

문득 이 드라마가 생각이 난 건, 요즘 고민 때문이다. 커리어라는 답이 없는 무한 게임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 더 큰 회사에 가기 위해서 같은 외적 동기들이 진짜로 가치 있는 것인지 그걸 해내면 정말로 기쁠지 확신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일을 하는 ‘낭만적인 이유’ 하나 쯤 가슴에 품고 살고 싶다는 생각에 미쳤다. 낭만은 고달플 수 있다. 일하다가 겪는 여러 아픔에 욕을 하면서도, 돌아오는 이유가 낭만적인 이유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면, 주인공 가브리엘은 하루 종일 실수를 연발하고 이 일을 계속 해, 말아 하면서도 퇴근 후에 영화를 보고, 대본을 읽는다. 그러면서 운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러 간다. 가브리엘에게는 일이 힘들어도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것도 영화라서, 열정을 채우고 돌아오는 것이다.

길게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욕을 하면서도 돌아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너무 좋기만 한 이유는 힘든 시기를 견디지 못하게 한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call my agent, 2015

내가 하는 일이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화면을 쉽게 만들고, 과업을 쉽게 만드는 것.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쇼핑하는 거, 알람 맞추는 거, 송금하는 거, 채팅하는 것까지 어려워야 하나. 하루 평균 5시간, 자는 시간을 뺀다면 1/3을 디지털 기기를 쥐고 산다고 한다. 이 세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일을 한다.

내 일을 이렇게 정의하니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 일의 목표가 네카라쿠배당토를 하나씩 다 찍어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회사에 가서 어떤 제품을 만들든 디지털 세계의 스트레스 총합을 줄이는 것이다. 이 일이라면 회사에 빌런이 있어도, 당장 성과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돌아갈 이유가 될 것 같다.

20대 후반에 난 꽤 긴 커리어 방황기를 겪었다. 디지털 디자인의 어쩔 수 없는 공허함,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손바닥만 한 세상에 매달리고 있다는 허전함이 최고에 달했을 땐 확실하게 단단한 오프라인 사업을 해보기도 하고, 확연히 손에 들어오는 물질을 다루는 디자인을 해보기도 했다. 이때 내가 택한 대안들이 대표적으로 다 좋기만 한 일들이었다. 힘든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땐 금방 싫증이 나서 더 나아갈 힘을 잃곤 했다. 커리어를 좋아함으로만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지만, 선택의 이유에 좋음만 있다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돌아올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하는 질퍽한 이유 하나쯤은 갖고자 한다. 세상에 재밌는 일 다 내버려두고 굳이 이걸 해야 하는 이유, 힘들어도 굳이 이걸 하고 싶은 이유. 이렇게까지 거창해야 하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올 만큼 대단히 낭만적인 이유. 나한텐 일을 하는 낭만적인 이유가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고 싶어서, 그래서 다들 덜 힘들게 살았으면 좋겠어서’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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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면은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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