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회사를 절실하게 다닐 때의 버릇인데, 이 회의는 얼마짜리 회의일지 생각해 보곤 한다. 정확한 사람들의 연봉은 모르지만, 회사 전원이 참석하는 2시간짜리 회의라면 한 달 인건비의 약 2/200, 1%를 태우는 회의라는 셈. 물론 이렇게 근로의 가치를 시간 베이스로만 계산해서 효율을 따지는 것은 지식 노동자에게 맞지 않다. 하지만 저렇게 환산해 보면 얼마나 회의 시간을 더 잘 써야 하는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회의가 아닌 전사적인 행사라면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 (비전데이, 얼라이먼트 데이, 올헨즈 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냥 행사라고 칭하겠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감은 물론이고, 이때 보여주는 프로페셔널함을 보고 우리 회사의 기준은 여기구나! 같은 것을 느낀다. 여러 회사에 다녀보면서 전사 행사를 통해 자부심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자부심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 효과에 차이는 완성도에 있었던 것 같다.
발표자의 리더십 있는 태도, 두루뭉술하지 않은 명확한 비전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큰 축을 담당한다고 느낀다. 임직원 굿즈, 걸려있는 포스터, 발표의 슬라이드, 케이터링에 박힌 작은 로고들이 그것이다.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싶겠지만, 생각보다 비주얼이 압도하는 힘이 커서 '우리 회사 잘하네, 멋지네' 하는 감상을 디자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시간을 내어 참석하는 행사일수록 행사의 감도는 항상 기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면서 만족스러웠던 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행사의 감도가 항상 높다는 것. 기대하는 것보다 큰 스케일과 완성도를 보면서 더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 하는 일인 만큼 참여하는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효과의 멀티플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참여하는 나 자신도 잠시 시니컬한 태도는 내려놓고, 우리 그동안 잘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