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평일 매일 아침, 한 편의 글을 받는 구독형 에세이인데 한동안 연재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다시 한 달간 시작되었고 다시 언제 할지 모른다는 말에 글을 읽으며 출근하는 한 달을 소중하게 보내는 중이다. 이번 연재 주제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고 한다.
나는 늘 이런 것이 궁금했다. 내 실속을 챙기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냥하면서도 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돈 더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비굴하지 않을까? 거절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을까?
— 「일간 이슬아」 첫 번째 글에서 발췌
이메일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배려와 애정이 우러나올 수 있는지 감탄한다. 출판계 사람들은 이렇게 멋진 글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것에 샘이 날 지경이었다.
(모든 글은 2025년 6월에 종이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때 다시 읽어볼 수 있겠다)
자연스레 나의 업무 글을 되돌아보게 된다. 슬랙은 어떠한가. 나도 이슬아 작가가 보내는 이메일의 양 못지않게 슬랙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 보내는 슬랙 메시지는 얼마나 될지 궁금해져 100까지 세어보다가 관두었다. 이걸 세고 있느니 이참에 슬랙 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1.간결하게 쓰기
슬랙을 받는 상황은 항상 바쁘다. 그리고 읽을 것들이 쌓여있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긴 글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Later 버튼을 눌러버린다. 받는 사람도 나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과한 수사 없이 (수사라고 말하니까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쿠션어라고 바꿔 읽는 것이 좋겠다.) 내용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편이다.
2.서식을 충분히 사용하기
항상 간결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논의를 정리해야 할 때, 회의록을 슬랙으로 갈음해야 할 때 등 꽤 긴 메시지를 쓰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럴 때는 충분히 눈으로 훑어 읽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대제목은 항상 빨간 이모지를 붙인다. 너무 과한 그래픽 이모지는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려서 나는 📌 🔥 📍 이런 이모지를 제목 앞에 붙이는 편이다. 🖋️ 💁♀️ 📋 이런 이모지들은 복잡해서 집중도가 떨어진다.
볼드로 주요 키워드를 강조하고, 숫자는 코드 서식을 쓴다. 코드 서식을 쓰면 모든 글자의 간격이 같은 Monospace 폰트가 되어서 %, 수치를 적을 때 잘 읽힌다.
그 외에 불렛 포인트, 숫자, 인용 문단을 적절히 사용해서 한 항목에 문장이 길지 않게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숫자를 이용해 개요를 적어야 할 때는 기본 숫자 서식이 아닌 1️⃣ 2️⃣ 3️⃣을 쓰는 것도 팁이다. 기본 숫자 서식보다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이렇게 정리하려면 시간이 꽤 든다. 어차피 읽고 흘러갈 글인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것이 맞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슬랙은 쓰는 사람은 나 혼자이고 읽는 사람을 10명이 훌쩍 넘는 글이다. 내가 공들여서 10분을 더 써서 모든 사람들의 1분을 아껴준다면 그게 맞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수의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내용이면 공을 들인다.
3.읽는 사람을 배려하기
읽는 이를 배려하자면 끝도 없다. 어쩌면 이것이 슬랙 쓰기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링크를 붙일 때는 http:// 로 시작하는 url 주소가 아니라, 블로그 주소 라고 제목에 하이퍼링크를 붙여 클릭했을 때 어떤 문서일지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문서의 캡처를 이미지로 함께 첨주하는 것도 자주 쓰는 방법이다. 아무래도 툴을 이동하는 것은 인지비용이 많이 드는 수고로운 일이다. 구글 드라이브나 노션 링크를 붙인다면, 슬랙에서 빠져나가서 노션을 열고 다시 이어 뒷 글을 읽기 위해 슬랙으로 돌아와야한다. 그래서 링크한 문서의 핵심을 캡쳐해서 메시지에 함께 붙여넣기도 한다. 슬랙을 빠져나가지 않고 바로 내용을 볼 수 있도록.
(이밖에 본인만의 슬랙 쓰기 노하우가 있다면 댓글로 더 알려주셔도 좋겠다.)
4.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서식을 떠나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이 메시지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살피는 편이다. 일을 하다보면 한 사람이 다뤄야 하는 일이 열 개는 거뜬히 넘는다. 내 슬랙의 Activity 탭을 열면 A와 개발 일정 얘기를 하고 있고, B와 제품 백로그를 하고 있고, C팀과 향후 협업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열 개 이상의 주제를 단 몇 분에게 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메시지가 약간의 맥락 정보만 제공해 줘도 빠르게 주제를 파악하는 데 훨씬 시간이 적게 걸린다. “지난번에 00 지표를 올리기 위해 000을 진행했는데 그 후속으로 000을 하기로 했었어요. 그래서 지금 000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UX 라이팅을 검토해 줄 수 있나요?”라는 메시지가 “000을 만들고 있는데 UX 라이팅을 검토해 줄 수 있나요”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이건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000 기능의 리텐션을 알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기보다 “이번에 비슷한 기능을 출시하려고 하는데 참고를 위해 이전 000 기능의 출시 전, 후 어떻게 리텐션이 개선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심지어 전자의 질문은 알아보고 답변하다 보면 “아, 그럼 그 전은 어땠나요?”라고 물어봐서 다시 찾아봐야 하기 십상이다.
5.유머를 지키기
나는 웃기지 않으면 발언권을 주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얘기가 재미없으면 아무나 말을 끊고 치고 들어오거나, 그래도 재미가 없으면 하나둘 조용히 자리를 뜬다. 그래서인지 나는 슬랙에서도 웃기려고 많이 노력한다. 예시를 가져오면 좋을 텐데, 최근엔 빵 터뜨린 것이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예시 없이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일간 이슬아」에 소개된 구문들을 가져와 보겠다.
아래는 이슬아 작가가 이연실 편집자로부터 받은 메일에 관해 쓴 글이다.
이연실 편집자는 좋은 소식이 생겨나면 **이메일 제목부터 ‘경축! 가녀장 일본 진출!’ 이라고 쓰며 호들갑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업무 중에 들은 얘기 중 작가가 조금이라도 기뻐할 구절이 있으면 메일에 꼭 인용하여 전달한다.
"요즘 작가님 연재글을 받으며 저희 이야기장수 직원들이 모두 짜릿하게 행복하고 힘나는 시기라 너무 좋습니다. 오늘 점심을 먹다가 최민경 대리님께, 이슬아 작가님이 민경 대리님의 인스타 글을 너무 좋아한다고 전해드렸더니, 빨갛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면서 "전... 지금... 죽어도 좋아요..."라고 속삭이셨어요. 이야기장수는 지금 이렇게 한껏 뚝배기처럼 달구어져 있습니다."
<가녀장의 시대>를 집필 중일 때였다. 소설의 반 이상을 써놓았는데 내가 연애에 정신이 팔린 탓에 원고 납품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때 이연실 편집자님으로부터 이런 메일이 도착했다.
"작가님 다름이 아니라 가녀장 원고를 기다리는 다수의 인물들로부터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아우성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입니다. (...) 카톡 이모티콘 중 '금방 하실 수 있잖아요'를 보면 작가님이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작가님은 정말로 금방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보고싶습니다... 압도적인 첫 번째는 가녀장 완고. 두 번째는 작가님 얼굴."
— 「일간 이슬아」 아홉 번째 글에서 발췌
슬랙과 이메일의 온도가 달라 실제로 이렇게 쓰면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좋거나 나쁘거나 항상 유머러스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슬아 작가는 이메일의 모든 디테일이 결국 사랑이라고 했다. 출판의 세계라면 모를까 IT의 세계라면 사랑은 과히 오그라드는 경향이 있고, 나는 배려라고 바꿔 부르겠다. 내가 좀 우스워 보일 수 있어도 셀프 디스를 감수하는 농담부터 다른 사람의 링크 클릭 시간을 줄여주는 캡처, 내용을 눈으로도 훑을 수 있는 들여쓰기 기법과 화려한 서식. 이 모든 것이 “나의 시간도 소중하고 이것을 읽는 당신의 시간도 소중합니다. 이 내용은 너무 중요해서 당신이 잘 읽기를 바라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 쓰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저와 일하는 것이 재밌길 바랍니다.” 라는 배려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