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업무 일지
오랫동안 준비했던 실험이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마음 속으로 콕 찍은 시안이 지표상으로 낮은 CTR을 보였다.
실험 대상은 내가 맡은 제품에서 가장 페이지뷰가 많은 화면이었다. 나는 그 화면이 너무 복잡해 보여서 이 팀에 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바꾸고 싶어 계속 들썩들썩했다. 시간을 쪼개서 틈만 나면 레퍼런스 찾아보고 새로운 구조를 프로토타이핑해 봤다. 거의 6개월간 붙들고 있었다. 많이 그려보면 정답이 나오겠거나 했는데 반대였다. 처음엔 확실히 생각한 방향이 있었는데 너무 헤집고 나니 오히려 혼란스럽고 처음 그린 모습이 제일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이 화면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평행 세계의 모습을 보고 나니 멀미가 났고, 일단 지금 어떤 세계에 있는지 일단 찍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팀을 설득해서 총 4개의 시안으로 실험했다. 확연하게 좋았던 안은 없어서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많은 배움이 있었고 이제 멀미는 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선은 넘어가 봐야, 여기가 선이구나 안다”는 말이 맞다. 4가지 실험안은 현재 가장 비슷한 모습부터 꽤 다른 모습까지 스펙트럼을 이뤘는데, 이렇게 모두 그려보고 지표를 검증하고, 정량적 피드백을 수집하니 “아 여기가 적당한 구간이구나” 알 것 같았다.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군의 UI 친숙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6개월 간 내 디자인 연습장에서는 알 수 없던 것이었다.
이걸 조금 확장해서 생각하면, 고민하고 토론해서는 올바른 답에 이를 수 없다고 봐도 된다. 마치 내가 6개월간 혼자 고민만 하다가 실험하고 보니 일주일 만에 답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실험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빠르게 해보는 것과 확실한 배움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문제가 안 풀린다고 계속 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레벨에서는 어떤 수준의 결론밖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사이클을 넘어 다음 사이클에 갔을 때 보이는 것이 있고, 그다음 사이클에 갔을 때 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 막히는 이유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이나 유저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느끼는 바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적으로, 총체적으로 배우는 것이 생긴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엔 실험 끝나면 단순히 ‘A 안의 CTR이 B 안의 CTR보다 N % 높았어요’를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 이상의 배움이 항상 있다. 그게 뭔진 나도 정확하게 꼬집지 못하겠는데 이런 경험이 쌓이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이런 것을 ‘디자이너의 근거 있는 직감’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좋아서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