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에서 일하면서 가장 오래했던 프로젝트는 해외송금을 런칭하는 일이었다. 이미 런칭한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최근 마케팅 영상이 새로 나와 그간 있던 일을 정리해보려한다.
당시에 나는 은행 지식은 물론 외화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다. 지구상 어떤 오지에 있든 와이파이가 되는 세상인데 해외로 돈을 보낼 때 하루 이상이 걸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 팀도 상황은 비슷했다. 해외송금을 운영해 본 경험은 있지만, 처음부터 만들어 본 경험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우린 6개월 뒤에 미국으로 돈을 보내야 했다.
파트너사 선정, API 전문 설계, 내부 규제 등 정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았지만 가장 고민한 것은 수수료 정책이었다. 다른 은행들은 다 이미 해외송금을 제공하고 있으니 후발주자로서 경쟁력을 갖춰야했고 그러려면 수수료가 저렴한 것이 가장 강력할 것이다. 하지만 수익을 위해서 무조건 업계 최저 수수료를 내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토스뱅크는 환전 수수료를 이미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수수료를 낮출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모두 계산기를 두드리며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디자이너로서 고객부터 파악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해외송금을 쓰는가. 그것부터 알아야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외송금이 너무 특수한 경험이라 인터뷰 대상자를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여러 스크리닝 설문 끝에 10명가량의 고객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용자들도 해외송금 수수료가 아깝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관성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즉, 은행마다 수수료가 모두 비슷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어서 더 저렴하게 제공한다고 해서 갈아탈 의향이 적었다. 약간의 이익보다는 내가 써 본 은행, 이미 내 송금 데이터가 모두 입력되어 있는 곳에서 계속 쓰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해외송금은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학비를 송금하는 유학생이라면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입학이 취소될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외국어를 잘 모르는 부모가 자녀의 학비를 송금해야 한다면? 처음 들어 보는 외국 은행의 계좌번호를 입력하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혹시라도 잘못 쓰면 내 돈이 공중분해될 것 같다. 게다가 해외송금은 1~2일 걸리기도 하니까, 모두 돈을 보낸 그 순간부터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불안을 느꼈다.
보통 인터뷰를 하면 공통된 불편함이 발견되고 감정이 두드러지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경우는 모두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깔려있었다. 유학생, 현지 체류, 해외에서 업무하는 사람 등 상황은 모두 달랐지만 감정은 동일했다.
이 점을 확인한 뒤부터 우리는 "수수료가 저렴한 해외송금"이 아닌 "불안하지 않은 해외송금"을 만드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투명하게 보낼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파트너사 선정, 통화별 정산 구조 등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경험 설계 차원에서는 송금의 주요 단계를 쪼개 보며 각 단계에서 어떻게 불안을 줄일지 고민했다.
송금 전
송금 전에 겪는 불안은 수수료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한 번 써 보면 수수료가 다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처음 써 보는 곳이라면 언제 어떤 금액에 대해 어떤 수수료가 부과되는지 불안해했다. 그래서 써 본 것을 계속 쓰게 되는 경향도 있었다. 만약 우리 서비스의 수수료가 복잡해서 써 보기가 두려워진다면 아무도 쓰지 않고 이탈할 것이 분명했다. 저렴한 수수료를 제공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수료가 명료하게 보이는지(혹시 나중에 더 붙을까봐 불안하진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다.
수수료를 설명하는 화면을 만들기 전에 이해하기 쉬운 수수료 정책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통 해외에서 무언가를 돈으로 환산할 때는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마치 면세 구간이 “미화 800달러”인 것처럼. 너무 다양한 외화가 있고 그 모든 외화를 환산할 하나의 기준이 필요한데 그걸 달러로 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은행의 해외송금 수수료 기준 또한 달러다.
운영 용이성을 생각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달러가 아닌 돈을 보내는 경우(예를 들면 유로)를 생각해 보면 사용자가 봐야 하는 통화가 벌써 3개다. 보낼 돈 500유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81만 원, 그리고 수수료 3달러. 운영 용이성을 위해서 사용자에게 복잡함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적으로 복잡하더라도 보내는 돈을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바꿨다. 화면상에서는 간단해 보여서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논의 과정이 길었고 계산도 한 단계 더 필요했다. 그래도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수수료 정책을 단순하게 바꾸고 송금의 가장 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용을 숨기지 않고 보여줌으로서 송금을 보낼 때 “내가 100만원을 보내면 환전하고 수수료도 빠지면 총 얼마가 도착하는거지?”를 확실하게 확인해야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금 중
송금 중 가장 복잡한 여정은 정보를 입력하는 단계다. 국내 송금은 보낼 금액과 계좌번호면 간단하게 끝나지만 해외송금은 은행 코드, 계좌번호, 현지 주소가 모두 필요하다. 이때 사용자들은 단순히 입력할 게 많아서 귀찮다는 수준이 아니라 “잘못 입력해서 돈이 안 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는 잦은 확인 경험을 제공하며 불안을 해소하려고 했다. 은행 코드는 “CHASUS33XXX” “322271627”같은 영문+숫자인데 딱 봐도 암호같이 어렵게 느껴진다. 이걸 입력하자 마자 바로 “JPMorgan Chase” 은행이구나 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한 번만 있어도 불안감이 떨어진다.
주소를 입력할 때에도 사용자의 자유도를 높이는 방법보다는 자유도가 낮은 방법을 택했다. 그 편이 정확도는 물론 안정감도 높여 주기 때문이었다. 그 방법은 프리 텍스트로 줄줄 입력하는 게 아니라, 마치 지도 앱에서 주소를 입력할 때처럼 조금만 쳐도 주소가 검색되고 정확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또한 지도 API를 연동하는 등의 추가 노력이 필요했지만 불안을 고객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특히 일본으로 돈을 보낼 때에는 받는 사람의 일본어(가타카나) 이름을 입력해야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이 경우에도 직접 일본어를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어로 입력하면 일본어로 변환해 몇 개의 리스트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심지어 휴대폰 설정 > 키보드 > 일본어 키보드 추가를 한 뒤) 일본어를 직접 입력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기에 이 방법을 택했다.
어떻게 하면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을 획기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이 모든 정보를 보내는 사람이 입력하지 않고 받는 사람이 입력하는 기능도 고안했다. 받는 사람의 주소를 몰라도 선물을 보내면 받는 분이 주소를 입력하는 “선물하기”처럼, 보내는 사람은 그냥 얼마를 보낼지만 정하고 보내면 된다. 그럼 받는 사람이 본인의 계좌번호와 주소를 입력해서 받을 수 있다.
송금 후
돈이 내 손을 떠났고, 받는 사람에게 도착하지 않은 단계. 사실 이때가 가장 불안감이 높다. 큰돈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이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보여 주기로 했다. 마치 택배 배송을 추적하는 것처럼. 한 단계를 넘으면 알림을 보내서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을 완전히 투명하게 보여 줄 수는 없다. 실제로는 “고객 확인 → 외국환거래 규정 확인 → AML·제재 스크리닝 → 수취은행 검사 → 입금 → 사후 모니터링” 같은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데, 이걸 그대로 보여 주면 복잡하기만 할 것이다. 이 과정을 모두 사용자의 언어로 치환하고 단순화해 “송금 처리 중 → 미국 은행 도착 → 입금 완료”라는 3단계로 구분해 진행 상황을 알렸다.
송금 단계를 보여 주는 기능은 다른 은행에서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토스뱅크 해외송금에만 있는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았고 토스에서 보내는 경험이 뭔가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보내면 보이는 해외송금” 이라는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를 도출할 수 있었고, 제품 경험과 마케팅이 완전히 일치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계속 감정을 다루는 디자인을 해 보고 싶었다. 시각 디자인이 멋진 이유는 말로 쓰인 메시지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디지털 서비스에서도 다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디지털 서비스는 논리와 편의의 세계고 감정 같은 것은 다룰 수 없다고 스스로 선을 그었던 것 같다. 게다가 여러 명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는 감정처럼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떤 서비스가 사용자의 감정을 고려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다. 논리가 아닌 감정을 기준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디자인 의사결정이 더 명료할 때도 있던 것 같다. 시안을 계속 그려 보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확실해 보이나, 이게 더 불안하지 않은가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호흡이 긴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 보며 또 다른 제품 디자인의 국면을 경험해 본 것 같아 뿌듯했던 프로젝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