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회사 계정 노션의 프라이빗 스페이스에는 “남의 노션 꿀단지”라는 페이지가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잘 정리한 문서를 모아두고 그 내용을 소화하거나 그 형식을 따라 해보려고 스크랩하는 곳이다. 다양한 직군 (PM, DA, PD 등)이 쓴 문서가 섞여 있지만 내가 디자이너라 그런지 다른 디자이너분들이 쓴 전달력 높은 문서를 보며 가장 깊이 감탄하곤 한다.
잘 정의된 실험 문서를 보면 문제 정의, 임팩트,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1, 2, 3이 모두 이해하기 쉽게 정의되어 있다. 회사에서 공통으로 쓰는 1 Pager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다른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도 이해가 잘 되는 건 설득과 공감이 모두 가능한 구조로 쓰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설득과 공감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설득은 얼마나 말이 맞느냐에 관한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각 가설이 충분히 맞는 말인지, 데이터든 고객 인사이트든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는지 따져보고 수긍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설득의 과정이다.
공감은 설득과 조금 다르다. 공감은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지는지, 얼마나 해결하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다. 뭐랄까, 얼마나 마음이 움직이는지에 가깝다. 예를 들어 ‘전체 사용자 중에서 큰 글씨로 키워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5%인데, 우리가 좀 더 타겟해야하는 5060 사용자라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생각해요.’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고 부모님 나이쯤 되시는 사용자분을 인터뷰하며 작은 글씨를 못 읽어서 무척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은 공감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설득과 공감 과정의 중요성은 내가 작은 규모에서 큰 조직으로 옮겨오면서 더 체감하게 되었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설득하고 공감을 얻는 난이도가 높지 않았는데, 지금과 같은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얼마나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큰 논리인지, 얼마나 공감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역량처럼 느껴진다. 그게 곧 디자이너가 낼 수 있는 임팩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혼자 제품을 만들 수 없고 결국 팀과 함께해야 한다. 그때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설득하지 못하면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나만 혼자 중요하다고 소리치는 일이 되어버린다. 또 설득되더라도 공감을 받지 못하면 성공할 때까지 재시도하기 어렵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한 번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 쉽지 않은데 실패를 딛고 두 번 시도하고 세 번 시도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관용도는 공감에서 나온다.
설득력을 확보하고 공감대를 얻는 일의 핵심은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다. 이때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정보 전달의 원근법을 잘 지키는 것에 있다. 정보의 원근법은 내가 지은 말인데, 정의하자면 정보를 전달할 사람들의 규모, 프로젝트와의 밀접함을 기준으로 얼마나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판단해 보는 것이다.
만약 제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규모 개편이면, 팀 모두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무척 단순화된 사용자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반대로 내가 속한 스쿼드만 설득하면 되는 문제라면 고객군별로 구체적인 문제를 나눠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지표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큰 규모를 설득해야 한다면 누구나 들어도 쉽게 이해하는 지표(방문율, MAU, 매출 등)로 얘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작은 규모의 설득이라면, 세부적인 지표 (3일 내 방문, 재방문 사용자의 매출 등)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이 경우를 나누지 않고 큰 규모를 설득할 때 너무 세부적인 이야기를 해버리면, 설득보다 이해가 더 어려워져 버리고 반대로 작은 규모에서 너무 큰 지표로 이야기하면 논리가 허술해 보인다.
또 다른 하나는 정보 전달의 관점인데, 모든 직군이 섞여 있는 다수에게 전달할 것인지 특정 직군에 전달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 개선이 어떤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이라면 디자이너들에게 설득과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겪는 문제를 기반으로 시작해서 지표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PO/PM과 논의할 때는 우리의 방향성과 OKR의 관점에서 어떤 임팩트가 있는지로 시작해서 이 개선이 정성적으로는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전달하려는 사람에게 익숙 맞는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의 규모와 거리를 생각해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말하자는 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일에 치여서 내 말만 하다 보면 매번 애쓰지 않는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의 역량이 발전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기 마련이고,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더 직접 하기보다 타인의 전문성을 모아서 곱절의 효과를 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좀 더 신경 써서 애써볼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