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주말이었다. 최근 3주간 결혼식이 연달아 있었고 꼭 가봐야 하는 박람회도 있어서 스케줄이 꽉 찬 주말을 보냈다. 주말이 충분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주일 전부터 아예 구글 캘린더에도 2일간 ‘아무것도 안 하는 주말’이라고 박아두고 의도적으로 쉬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량은 늘렸고 스쿼드, 덤벨 벤치프레스, 크런치 같은 동작을 열 몇 번씩 했다. 그리곤 점심을 먹고 블로그 글을 발행하고. 내가 글을 쓰는 사이 배우자는 빨래를 개면서 게임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지, 아니, 제발, 그렇지,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아빠가 축구를 보는 모습과 너무 비슷해 속으로 웃었다.
글을 다 쓴 나는 형편없는 문장력에 낙담하고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야겠다고 소파에 누워 책을 펼쳤다. 그리고 어김없이 낮잠을 잤다. 삼십 분 정도 자다가 일어나보니 그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었다. 배우자는 혀를 쯧쯧 차며 개어둔 옷을 옷장으로 옮겼다.
이 풍경이 낯설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오래전 내가 어렸을 때의 우리 집 주말이었다. 딱 어떤 하루가 생각나진 않지만, 중학생쯤 주말 풍경이었던 것 같다. 주말은 합법적으로 라면을 먹는 날이었다. 나는 주말이니 일종의 포상처럼 평소에 엄마가 금지하는 라면을 주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보니 주말은 엄마도 휴일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라면이었다. 일요일 라면은 아빠가 끓였다.
라면을 먹고 나면 서프라이즈라던가, 투니버스 따위를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나면 할 게 없었다. 이제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아빠는 낮잠이나 자자고 했다. 나도 낮잠 행렬에 동조하거나 날씨가 좋은 날은 조금 투덜거리면서 친구와 놀러 갔다.
지금 나는 예전의 부모와 살던 곳과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 산다. 사춘기와 이십 대를 통틀어 나는 그들과 다르게 살 것이라고 발버둥 쳤는데, 대학 진학도 취직도 벗어나고자 내린 결정이었는데 그렇게 쌓아온 삼십 대의 어느 일요일에서 내가 익숙한 풍경을 마주해버렸다.
과거 내가 보기에 부모의 삶은 윤택했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난 자꾸 트랙에서 튀어 나가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그런 스스로가 대견한 날도 있었지만, 외로운 날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어떤 일요일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조금 허탈하고 많이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이십 대 내내 달려 애써 도달한 오늘처럼, 그들이 이십 대 내내 마련했던 나른한 주말에 내가 살고 있었음이 좋았고 만약 내가 이대로 어떤 인간을 낳아 기르게 된다면 그 작은 인간도 나와 비슷한 트랙에서 시작해 비포장도로를 달려 평화로이 낮잠을 자는 일요일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것도 퍽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