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달라진 워크플로우 공유
8월 1주차 업무일지
최근 나의 바뀐 워크플로우를 공유하며, 여전히 디자인을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려한다. 세상이 너무 바뀌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디자인을 잘하는 것인지 무척 헷갈리기 때문이다.
원래는 일하던 워크플로우를 단순화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문제 정의 → 디자인 초안 → 사용성 테스트 → UI, UX 라이팅, 인터랙션 디테일링 → 개발 및 배포
하지만 최근 이렇게 달라졌다.
문제 정의 → 디자인 초안 에이전트로 더 다양한 초안 탐색 → 괜찮은 시안을 구체화해 직접 디자인 → 클로드에게 말로 설명하며 인터랙션 초안 제작 → 괜찮은 시안 선택 → 내부 기술 스택에 맞춰 직접 재정리 → 개발 및 배포
나는 원래 말로 생각이 정리되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1-pager로 정리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는 논리적 비약이 없는지,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다음 초안을 스케치하는 과정은 속도가 엄청나게 달라졌다. 회사에서 배포한 사내 Product Designer Agent를 쓰고 있는데, 내가 세 시간은 붙잡고 있어야 나올 수 있었던 10개의 시안을 10분 만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속도뿐만 아니라 다양성 측면에서도 크게 달라졌다. AI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의 시안을 그려 올 때도 많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할지 결정하는 일뿐이다.
결정을 내린 뒤에는 초안을 바탕으로 직접 디자인한다. 화면을 모두 AI가 그리게 하기에는 아직 완성도가 떨어지고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 단계에서는 간격을 조금씩 조정하고, 레이아웃을 다듬고, 내용을 약간씩 바꾸고, 지켜야 하는 컴플라이언스 가이드에 맞춘다. 이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느니 직접 수정하는 것이 더 빠른 편이다. 똑같이 디자인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AI의 결과물은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들어서 직접 그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렇게 피그마에서 완성된 화면의 레이아웃을 다시 코드로 변환해 Prototyping Agent에 전달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화면을 움직이고 작동하게 만들며 인터랙션을 조정한다. 마음에 드는 시안을 찾아 결정한 뒤에는 다시 세밀한 조정, 예를 들어 딜레이를 0.3초에서 0.7초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직접 하고 핸드오프를 전달한다. (사실 상황에 따라 핸드오프를 작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팀의 개발 환경에 맞춰 사람이 조정해야 하는 내용이 있어서 작성한다.)
내가 어떤 일에 직접 손을 대는지 생각해 보니, 여전히 직접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결과물을 미세 조정해 퀄리티를 높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하고 맥락을 추가하거나 제거하는 일이다. 디자인을 미세 조정하는 일은 머지않아 AI가 나의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적 감각을 구체화하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일은 더 잘하고 싶으면서도, 아직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 일이다.
우선 어떤 맥락을 추가하거나 제거하려면 생각이 무척 유연해야 할 것 같다. AI에 어떤 맥락을 부여할지 정하는 것은 매우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사용자 경험이 근본적으로 무슨 속성을 띠고 있는지 고민하고, 그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무언가와 섞어 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채권’을 설명하는 상세 페이지를 만들 때, 이것이 설명을 보고 돈을 지불하는 커머스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커머스의 관점에서, 이를테면 쿠팡에서 채권을 판다면 어떤 모습일까? 커머스의 winning pattern을 금융 앱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고, 흥미로운 실험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하려면 머릿속에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개념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러 관점의 선택지가 나왔다면 판단을 잘해야 한다. 이때는 스스로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종종 “클로드가 이게 좋다고 해서요”, “몇 번 돌려 보니까 이게 최선의 시안이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각자가 해야 할 판단의 의무를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나 팀원에게 전가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판단은 분명 디자이너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이며, 그 근거 또한 명확해야 한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것으로는 누구도 설득하기 어렵다. 나만의 의사 결정 기준과 체크리스트가 결국 더 중요한 디자이너의 역량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UI를 깎고 또 깎는 크래프트 정신을 가진 디자이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결국 인간이 먼저 고점을 뚫어 줘야 AI도 그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장인 정신에 가까운 디자인 디테일을 유지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이야기다. 다만, 문제는 내가 그런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나 같은 제너럴리스트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창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연결하지 못하는 맥락을 연결하고,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