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리팩토링
올해부터 일요일에 일기를 몰아 쓰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발단은 매달 가는 브로우바 옆에 문구점이 생긴 것이었는데 평소에 안 하던 것을 해보자, 소소한 행복을 찾자는 나만의 미션에 혈안이 되어있던 터라 나답지 않은 (나는 어렸을 때도 6공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고 오히려 아트박스 공책보다 옥스퍼드 노트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일을 벌여보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스티커 가게에 들어가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지갑은 아주 쉽게 열렸다. 소복소복 장바구니에 스티커가 쌓였고 그걸 붙일 곳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다이어리를 샀다. ‘얼마 안 하네, 뭐’ 하면서 담았던 것은 계산대에 가서야 얼마나 하는지 알게 되었고 돌이키긴 늦어서 이젠 정말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써야 했다.
재미와 책임감으로 시작한 다이어리 기록은 나름 재밌었다. 원래 매일 아침에 쓰고 싶었지만 금세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 시도 끝에 잡은 적정한 타이밍이 일요일 저녁이다.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소소하게 몇 줄이라도 적고 어울리는 스티커를 붙이는 게 퍽 재밌다. 스티커까지 붙여가며 데스노트를 쓸 순 없으니까, 대부분 좋은 말 긍정적인 감상을 적게 된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그런 감정이었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괜찮아져서 다행이라는 식이다.
당시의 마음이 어땠는지 간에 며칠이 지나선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기록하는 것이 꽤 괜찮아 보인다. 그때의 기억일랑 그냥 지나가는 것이고 여기 눌러 적어서 땅·땅·땅 하는 것이 마치 마지막 3심 재판 같다. 그럼 이게 결론이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까 일상의 리팩토링인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지나서 안 쓸 코드는 버리고 쓸 코드는 남겨두는 것처럼 왁자지껄한 당일은 모두 지나가고 좋은 것을 걸러 남기는 게 일요일의 내 리팩토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