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와우 모멘트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동료와의 신뢰는 선형적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쌓여서, 어느 순간 훅 이 사람 믿을만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신뢰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신뢰가 ‘Give First’ 면 어떤가 싶다. 동료로서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지켜본 뒤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일단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신뢰를 먼저 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은 신뢰를 먼저 주고 경험을 통해 그 신뢰가 낮아지는 것이나, 신뢰가 0에서 시작해서 점점 쌓아가는 것이나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전자의 경우가 더 생각지 못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뢰 0에서 시작하는 후자의 경우 적정 신뢰를 얻는 과정이 오래 걸리고 지치는 과정이라는 것 또한 경험을 통해 배웠다.
힘든 경험이 더 생생하니까 후자의 경우를 먼저 얘기해 보자면, 나는 새로운 팀에 들어갔을 때 신뢰를 얻고자 부단히 애썼다. 실제로는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신뢰 자산이 바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빨리 쌓아 올리려고 노력했다. 반대 관점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의 말이 얼마나 인사이트 있는지, 얼마나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판단하려 했다. 그 과정은 매우 피곤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말에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들어야 했고 반대로 내 크고 작은 행동이 신뢰 점수를 깎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다 보니 일할 수 있는 정도의 신뢰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냥 처음부터 믿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환영하고 당연히 잘하겠지, 믿어주면 더 쉽지 않았을까. 왜 가끔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능히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줘서 실제로 해낸 적. 신뢰도 그런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서로 조금 부족했더라도 당연히 잘하겠지, 믿어주면 그만큼 더 잘하게 되는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서프라이즈를 기대해 볼 수 있기에 일단 믿어주는 것이 현명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커리어 여정에서 좋은 사람들과 최고의 팀워크로 착착 해내는 쾌감을 경험하는 게 얼마나 귀한가. 나에겐 그런 경험이 커리어라는 긴 길에서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러니까 더욱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 낭만적 직장인의 태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단 믿어주는 게 나이브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좀 더 따뜻하고 현명한 동료가 되고자 다짐해 본다.
자영님 글은 늘 좋았는데 오늘은 유독 더 좋아요. 추운 아침 따듯한 마음이 와닿아서 그런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