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준비물

세상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갈 때가 있다. 세상이라는 파도 앞에서 내 노력은 너무 가소롭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언제나 필요한 건 돈과 용기뿐이라는 것. 순진하게 용기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머리가 너무 커버렸다. 아니, 머리가 아니지. 내가 떠받쳐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은 너무 모든 것을 쉬워보이게 만든다. 돈만 있으면 내 꿈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을 다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는 것은 돈이 있어도 어렵고 세상은 돈보다 비싸다.

그래서 돈과 용기. 이 두 가지면 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뭐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다행히 이 두 가지의 유무가 딱 떨어지는 1과 0의 문제는 아니다. 우린 많은 경우 돈이 조금 있고 용기도 조금 있거나, 돈은 꽤 있지만 용기는 거의 없는 뭐 하나 완벽하게 많지도 없지도 않은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역설적으로 뭐 하나가 완벽하게 없는 경우는 없으니, 한쪽이라도 꾸준히 늘려가면 하나는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럼, 대부분 할 수 있는 건 용기를 늘리는 것이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각자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을 듣고 있으면 용기 비슷한 것이 생긴다. 우연히 보게 된 천문학 유튜브에서 무수히 많은 별과 은하가 쏟아지는 영상을 보며 용기 비슷한 것이 생긴다. 손님이 거의 없던 식당에 하루 이틀 손님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용기 비슷한 것이 생긴다.

언제나 필요한 것은 돈과 용기.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기,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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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

나는 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져주는 듯이, 내가 잘못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듯이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쉽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로 알아듣고 넘어가자는 태도로 성숙하게 ‘그땐 그렇게 말하셔서 이런 뜻인 줄 알았어요’, ‘알겠어요, 그건 제가 오해한 게 맞는 것 같네요’.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럼 적당히 체면을 깎지 않는 선에서 ‘나는

규격에서 벗어나기

얼마 전에 이사했다. 이전 집과 주방 구조가 특히 달라 고민했다. 냉장고 옆자리에 김치냉장고를 넣을 만한 자리가 있는데 난 김치냉장고 안 쓰니까 그곳에 원래 쓰던 전자레인지 수납장을 놓으면 되겠거니 계획했다. 미리 폭의 크기를 재어보는 꼼꼼함까지 부렸는데 막상 가져와서 설치하니 애매했다. 폭만 맞고 뒤에 공간이 남았다. 30센티 정도.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뒤에

좋아서 쓰는 제품

이번 주말에는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이벤트인 다빈치 모텔에 다녀왔다. 언제부터 현대카드를 썼더라. 대학생 때 외국 디자인 서적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가고 싶어서 현대카드를 만들었다. 그땐 어렸을 때라 연회비가 가장 싼 카드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고메위크에 관심이 갔고(번번이 예약은 실패했지만), 예쁜 카드 플레이트를 갖고 싶었고, 코스트코가 필요했고,

똑똑한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똑똑함이라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다. 제품 전략을 세우기 위해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한 자료, 빈틈없는 경쟁사 비교를 몇 페이지에 나눠 설명을 듣고 있으면 너무 많은 숫자와 그래프에 압도당해 그걸 잘 이해하는 사람이 똑똑한 디자이너인 것 같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래서 해결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