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몰트 위스키 잔, 품위를 장전해두기
먹는 것은 무척 중요하면서도 소박한 일로 취급된다. 하지만 마시는 것은 조금 다르다. 특수한 경우인 물을 제외하곤 음료를 마시는 일은 부가적인 일로 치부된다. 음식점에 가도 그렇다. 메뉴는 꼭 골라야 하는 것이지만, 음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다. 그렇듯 마시는 일은 사치스러운 일이어서 호사스러운 집기가 필요하다. 컵(혹은 잔)이다. 접시는 고작 담아야 하는 물체의 크기와 성질 (고체냐, 액체냐 하는 등)에 따라 써야 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만, 음료는 다르다. 물인지 술인지, 술이라면 맥주인지 와인인지, 또 와인이라면 어느 지방에서 만들어진 와인인지에 따라서도 아주 까다롭게 잔을 골라야 한다. 커피를 담는다면 또 어떤가. 아이스인지 핫인지, 기본적으로 물을 사용했는지 우유를 사용했는지에 따라서도 무척 다르다. 아주 유난스럽다. 그런 이유로 나는 컵을 좋아한다. 소박한 나의 삶에 소량 첨가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요소랄까.
설거지할 때도 모든 접시의 물기를 닦아 바로 정리하는 성실함은 없지만, 리델 싱글몰트 위스키 잔은 예외다. 이 위스키 잔은 항상 설거지의 가장 마지막 순서다. 찬물로 닦으면 반짝반짝하게 닦을 수가 없어서 손이 데일 것 같은 뜨거움을 감수한다. 바로 닦지 않으면 물 자국이 남으니까 귀찮음 또한 감수하고 행주를 꺼내 바로 물기를 닦는다. 지문이 남지 않도록 손에 행주를 씌워서 잔의 모서리를 잡아 찬장에 넣으면 끝이다.
절대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의 리델 싱글몰트 잔은 2년 전에 샀다. 혼자 사는 내 집에는 보급형 이케아 와인잔이 있었는데,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좋은 와인은 핸드메이드 잔에 마셔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땐 핸드메이드 잔이 뭘 뜻하는지 몰랐는데, 와인을 담은 볼 부분과 그 볼을 지탱하는 기둥(스템이라고 부르더라)사이에 이음새가 없이 한번에 만들어진 것을 핸드메이드 잔이라고 했다. 저렴한 와인잔들은 볼과 기둥을 따로 만들어서 접합해 생산 단가를 낮추는데 그래서 사이에 이음새가 생긴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나의 삶이 사치스러운 순간조차 보급형 생활인 것 같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인잔과 함께 이 싱글몰트 잔을 구매했다. 사실 그 사소한 차이로 맛이 얼마나 다를까 싶다. 다르다고 한들 내가 그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괜한 것을 샀나 싶은 후회도 했다.
정말 일이 꼬일 대로 꼬이는 날이 있다. 비정기적으로 그런 날이 생긴다. 바빠서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마침 집에는 먹을 것도 똑 떨어져서 컵라면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거라도 잘 먹어 보겠다고 포장지에 적힌 더 맛있는 방법을 따라 해보며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막 꺼내려던 차에, 손이 미끄러져서 뜨거운 라면을 모두 바닥에 쏟아버렸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라면을 떨어뜨린 일이 울 일까진 아니지만, 눈물이 났다. 옆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라 나를 달래줄 수도 없고 라면 국물을 닦아줄 수도 없었기에, 게다가 라면 국물은 내 감정을 기다려주지 않고 냉장고 아래 바닥으로 점점 기어들어 가고 있었기에 울면서 걸레질을 했다. 역시 단순 노동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는지 구석구석 빈 곳 없이 국물과 면을 닦는 사이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오히려 뿌듯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겹쳐도 내 일은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소를 마치고 주방을 멍하니 보다가 리델 싱글몰트 위스키 잔이 눈에 들어왔다. 밥 생각은 사라져서 (그리고 기분상) 왠지 저걸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위스키를 조금 따라서 마셨다. 아주 얇은 유리잔이 입술 곡선에 맞춰 구부러져 있고 그 라인을 따라 위스키가 흘렀다. 기분이 좋은 것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좀 기분이 나아졌다. 내 눈앞에서 엎어져 버린 라면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자인 것과 동시에, 귀하게 만들어진 잔에 적어도 3년은 묵혀둔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기 위안 삼았다. 라면 따위에 울지 말자. 그리고 유사시 쓸 수 있도록 언제나 품위를 장전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