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취미 옹호론자

새 회사에 출근한 지 이 주가 지났다. 아직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어색한 상태다. 빨리 어색함을 풀고 싶어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데,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취미가 있으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질문을 들으면 좀 아득해진다. 왜냐면, 나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밍, 등산, 다이빙, 골프, 기타, 피아노, 베이킹 같이 쿨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넘친다. 그에 비하면 나는 글쎄,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이건 생존에 가깝지, 취미라고 할 순 없을 것 같고 ‘저 주말에 소파에서 피자 시켜 먹으면서 티비봐요!’라고 주말 일상을 열거하면서 취미라고 하긴 부끄럽다. 진정한 스타트업 피플이라면 주말엔 룰루레몬을 입고 한강 조깅 정도는 해줘야 일과 삶 모두 대충하지 않는 프로✨ 같은 느낌이 나니까.

취미를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도 하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위해서 청소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책을 보고, 글을 쓴다. 그렇다고 저 ‘책 읽기가 취미예요’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음. 취미가 없군’이라고 여길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 책 읽기는 너무 오랜 시간 만인의 둘러대기용 취미가 아니었는가.

아무튼 그래서 ‘취미가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대답하기가 참 까다롭다. 나도 아주 가끔은 홍제천을 달리기도 하니까 ‘주말에 러닝해요!’라고 쿨한 척할지 아니면 ‘저 그냥 집에 박혀서 드라마 보는 거 좋아해요’라고 하고 솔직해야 할지. 아, 그냥 취미가 없다고 말할까. 아무래도 나는 취미가 없는 것인가. 이게 이렇게나 고민할 일인가.

이런 고민을 글까지 적어 가면서 하는 이유는 언제부턴가 라이프 스타일도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독특한 취미를 가져야만 세련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촌스럽게 보이고 싶진 않으니, ‘취미가 있으세요?’란 질문엔 충분히 센스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신중하게 답해야 할 것만 같다.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취미는 그저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나는 내향인이라 누구와 함께 하기보단 내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 글쓰기, 책 읽기가 그러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종류의 밋밋한 취미(뜨개질, 책, 퍼즐 맞추기…)가 러닝과 클라이밍보다 쿨해 보이는 세상이 오긴 어려울 것 같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쩔 수 없다.

이제야 여러 사람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건대, ‘제 취미는 청소와 책 읽기와 글쓰기고요, 약간 촌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게나마 내 취미를 선언하며 밋밋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옹호의 깃발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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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

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