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본 '더 인플루언서'

'더 인플루언서'를 재밌게 봤다. '더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인플루언서들의 서바이벌 예능으로 SNS의 인플루언서들이 나와서 콘텐츠 댓글, 좋아요, 라이브 시청자 수 등을 두고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뭐 재밌겠어?’ 하면서 보다가 내 직관이 계속 틀리니까 ‘이게 된다고?’를 외쳤고 계속 다음 화를 눌렀다.

(약간 스포일러 주의)

내 직관이 틀렸던 것은 3 라운드였다. 참여자들이 각 한 장의 피드 사진을 올리고 시선을 많이 끈 사람이 살아남고, 가장 시선을 받지 못한 사람이 떨어지는 회차였다. 당연히 고자극 도파민 덩어리의 사진이 가장 이목을 끌 것 같았지만 그 사진의 제출자가 탈락했다. 모두가 고자극의 사진을 쓰니까 아무리 무리수를 둔 사진을 올려도 눈길을 끌지 못하고 오히려 참신한 사진이 살아남는 것을 보면서 CTR 이란 무엇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모든 컴포넌트가 빨간색! 움직이는 텍스트!! 그라데이션!!! 3D!!!!!!! 외치고 있고 아무것도 클릭률이 나오지 않는 화면 같았달까. 아무리 고자극이어도 똑같은 것은 지기 마련이라는 결론이 SNS 세계에서도 동일한 것 같다.

얼마나 댓글이 많이 달리는지로 승패를 가르는 라운드도 있었는데 그 라운드에선 이벤트 스킴에 대해 고찰했다. 담백한 피드만으로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으니 모두 자신이 가진 무기로 이벤트를 걸었는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인플루언서 개인이 지출한 금액과 댓글 수가 비례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대충 계산해 보니 상위 TOP 3 인플루언서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쓴 사람이 댓글 수가 가장 많았고, 가장 많이 쓴 사람이 제일 적었다. ‘이 정도 리워드면 참여하겠지’를 넘어서 최종 지표를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 영리한 설계가 필요하다. 무조건 리워드를 준다고 참여도가 올라가는 시대를 지난 것 같다.

그 외에도 어떻게 시선을 끄는지, 어떻게 유튜버들이 소위 어그로를 끌고 어떻게 프레이밍을 하는지 볼 수 있었는데 나도 이런 SNS에서 누군가 휘두르면 휩쓸리는 ‘좋아요 1’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이런 건 디자인할 때 적용해 봐도 좋겠다 싶은 인사이트도 있었다.

아무튼,

(스포일러 끝)

갑자기 딴 길로 새자면, 나는 이사배 아티스트의 팔로워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의 콘텐츠로 밀고 나가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이 가장 강하다는 확신을 심어준 참여자였다.

이사배님는 다른 참여자들과 다르게 모든 게임 라운드에 자신의 콘텐츠로 승부를 걸었다. 다른 참여자들은 게임 미션에 따라서 자신이 원래 특징을 버리고 아예 다른 시도를 하기도 했는데 이사배님은 꾸준히 본인의 강점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갔다고 느꼈다. 조회수 높이려고 평소와 다른 콘텐츠를 올림으로써 정체성을 잃는 비용이 단발적으로 얻은 조회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사배 채널의 팔로워는 남달랐다. 굉장히 참여도가 높은 고밀도의 팔로워들이었다. 마치 똑같은 MAU를 가지고 있는 서비스라도 Stickness(DAU/MAU) 지표가 다르면 성장세가 다르듯, 비교적 적은 수-고밀도 팔로워와 많은 수-저밀도 팔로워를 가진 채널 중 고밀도를 가진 쪽에서 더 높은 광고 효율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고밀도의 팔로워를 만들어나는 것은 훨씬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라 단 하나의 실버 불렛 콘텐츠로 만들어냈을리 없겠다는 짐작도 들었다. 이사배님이 특히 팔로워를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고 그건 고스란히 팔로워의 참여 밀도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프로덕트 디자인을 두고 '더 프로덕트'를 만들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비슷한 환경을 주고 퍼널 전환율 높여보세요, 푸시 클릭률 높여보세요 게임을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유명 채널들이 기획해 줬으면! '좋아요'와 ‘시청 지속 시간’으로 보답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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