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일간 이직기

한동안 거처가 정해지지 않아서 글을 쓰지 못했다. 날짜를 세어보니 첫 지원부터 내일 출근을 앞둔 지금까지 67일이 걸린 이직 준비였다. 이번 이직은 그동안의 이직 중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많은 곳에 지원한 이직이었다. 이 기간에 했던 생각을 짧게나마 정리해 본다.

솔직한 좋은 사람이 되기

많은 사람을 만나 커피챗을 하고 면접을 보면서 가능한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다. 면접과 커피챗은 더 좋은 지원자처럼 보이도록, 반대로 더 좋은 회사처럼 보이도록 서로를 속이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 팀을 만나면서 좋은 인상을 받은 팀일수록 더 회사의 상황, 그리고 회사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험과 아닌 경험을 포장 없이 사실에 가깝게 말한다는 것을 느끼고 나도 더욱 진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하거나, 작은 일을 큰일처럼 부풀리지 않으려했다.

이런 태도로 면접을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생겼다. 최종적으로는 가지 않게 된 회사의 면접관 중 한 분이 모든 채용 과정이 끝나고 링크드인으로 연락을 주셔서 네트워크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분은 커리어나 디자인 고민을 나누기 위해 뜻하지 않게 만나보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겐 처음이라 신기했다. 이직 과정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커리어를 계획하지 말고 준비하기

커피챗, 직무 면접을 거쳐 몇몇 회사에서 컬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컬처핏 면접에서 공통적으로 물어봤던 질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커리어 최종 목표’였다. 안 그래도 말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여러 번 대답하다 보니 더 생각이 깊어졌다. 결론은 아무래도 나는 커리어 목표가 뚜렷하진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략 ‘이런 길로 가야지’하는 방향 정도는 있지만 언제 뭘 할지 등 구체적인 인생 계획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너무 무계획 커리어처럼 보여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던 차에, 팀 쿡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25년간의 향후 인생 계획을 세워도 18~24개월 정도만 유효하지 그 이후엔 아무것도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생을 계획(=예측)하지 말고, 준비하는 편이 이롭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내가 팀 쿡보다 더 삶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텐데, 나라고 다를 리 없다. ‘커리어 최종 목표’ 또한 방향만 있고 언제 어디에 도착할지는 정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괜히 불안만 가중될 뿐이다.

나에게 중요한 가치

감사하게도 합류하고 싶은 두 곳에서 최종 제안을 주었는데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며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졌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자극받을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더 큰 조직에서 더 많은 사람과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좋아보였다. 그래야 그 안에서 성장하는 스스로가 만족스럽고 결과적으로 더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또 달릴 일만 남았다. 이 선택이 나의 커리어 여정에 좋은 경험이 많이 쌓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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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

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