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가속도

나는 일 욕심이 매우 많다. 어떻게 하면 내가 맡은 일을 탁월하게 해낼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는데, 수 개월간 나의 화두는 “얼마나 효율적인 루틴을 만들 것인가”였다.

이 말은 아래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 업무시간을 최대화하기 위한 출퇴근 시간 정하기 (길 밀리는 시간은 피한다)
  • 점심을 먹지 않거나 간단하게 먹으면서 일해보기.
  • 저녁 이후 시간엔 얼마나 잔여 업무를 마무리할 것인가 정하기.

과하다 싶지만, 당시엔 업무 시간에 회의들로 대부분 시간을 써버려서 업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나름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가 퇴근길에 문득, ‘근데 하루에 8시간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되돌아보니 “얼마나 일하는 데 시간을 확보할 것인지”에만 집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방식으로는 나는 점점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그것조차 한계치에 다다랐을 땐 잠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한계가 보였다.

다음과 같은 시도로 바꿔봤다.

  • 캘린더에 방해금지 시간을 걸고 그 시간에는 꼭 집중해서 그날 해야 하는 일을 꼭 끝내기.
  • 슬랙에 바로바로 답장해야 하는 강박을 버리고, 40분 집중해서 일하고 10분 동안 슬랙을 확인하고 나머지 10분은 잠시 휴식하는 뽀모도로를 하기.
  • 점심은 짧게라도 꼬박꼬박 먹기. (최근 위장장애를 앓고 큰 깨달음이 있었다.)
  • 업무 외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다 완벽하게 모두 성공하진 못했지만 위의 노력으로로 깨달은 것이 있다. 일을 빠르게 해내려고 하고, 업무시간을 길게 늘리기 위해 일을 더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내는 등 ‘업무 시간의 효율화'만 추구하다보면 바쁜 상태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고찰해봤는데, 나의 결론은 바쁨은 가속도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다. 그냥 현상 자체만 묘사하자면 이렇다. 바쁜 스케줄에 몸을 맡기면 하루가 허겁지겁 지나간다. 점심도 건너뛰고 회의를 준비했지만, 회의는 늦어지고, 다음 회의도 늦게 들어가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하고, 그럼 하는 것도 없이 “왜 벌써 5시지?”하는 오후를 맞이하게 된다. 바쁨의 가속도에 빠지면 계속 정신없는 상황에 매몰된다. 그 결과 실제로 그렇게 긴박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바쁨이 가속도를 내는 원인을 규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왜 이게 해결책이 되는지 설명이 어렵지만, 내가 찾은 해결책은 아침을 느긋하게 보내는 것이다. 요즘 아침을 차려먹기도 하고, 가끔 운동을 가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는데, 이런 활동이 말도 안되게 하루를 제정신으로 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바쁨의 가속도에 빠져버린 삶은 마치 단체줄넘기를 할 때 친구들의 ‘지금이야 들어가!’하는 소리에 허겁지겁 들어가서 눈치보며 줄을 넘는 모습이었다면, 아침 시간을 가지고 사는 것은 고수처럼 속으로 ‘ 하나, 둘, 셋’하고 줄을 넘다가 ‘음차’ 하고 줄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아, 역시 엄마 말이 다 맞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챙겨먹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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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

시들함은 해롭다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즐겨보는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소개해서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시들함’이라는 마음 상태를 정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력을 찾는 방법을 말한다. 마침, 당시 내 감정 상태도 딱 그러해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시들함은 다음과 같다. *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으니 축복받은 셈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