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처음은 욕심만큼 못해

잘 해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욕심만큼 잘 해내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내 욕심은 100에 있는데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80정도 성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주 인터렉션을 매끄럽게 잘 만들고 싶은 화면이 있었다. 레퍼런스도 엄청나게 찾아보고 계속 파고들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결론은 허무하게도 복잡한 효과가 들어가지 않는 화면 전환을 적용하기로 했다. 시도했던 것 중에서는 이미지는 천천히 페이드 인되면서 글자는 컬러 그라데이션이 돌고, 카드는 뒤집어지는 화려한 시안도 있었다. 근데 막상 보니까 너무 과했다. UI도 꾸안꾸가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꾸꾸꾸였다.

그래서 다 덜어내고 나니 좀 보기에 편안했지만, 마음은 허탈했다. 이게 몇 시간이나 쓴 결과인가. 분명 더 나은 결말도 있었을 거다. 좀 더 노련했으면 단순하면서도 디테일이 들어간 센스있는 인터렉션이 될 수 있었을 거다. 근데 나는 지금 그 정도의 센스를 발휘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실 인터렉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는 눈도 만들 수 있는 결과도 평범한 수준이다. 더 끌어올려 보려고 아등바등하긴 하는데, 초기에 그렇듯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의 점을 찍는 것이 의미가 있다. '난 지금 여기 찍었고, 다음엔 여기로 갈 거야.'하는 것. 어차피 처음은 욕심만큼 못 한다. 그러니까 빨리 받아들이고 무수한 점을 찍어내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쌓이면 노력에 비해 결과가 더 잘 나오는 지점도 분명히 온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나는 부끄러운 것을 내놓기 싫었다. 아무리 그래도 몇 년 차 디자이너인데 새로운 걸 시도해 봤다고 결과물 퀄리티가 이 정도면 너무 하지 않나. 왜 이것밖에 못 하지? 하는 생각이 지배했다. (새로운 것에는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타입 디자인, 드로잉 등이 속했다) 못난 결과물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시도하지도 못하거나 만약 시작했다 하더라도 괜찮게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 완성하질 못했다.

최근 취미로 소설 쓰기 강의를 들었는데 누군가가 강사이자 현 소설 작가님에게 언제 퇴고를 멈추고 완성할 때인지 물었다. (실제 질문은 언제 작품을 놓아줄지였다. 역시 문학가들) 답변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게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의 나로선 이게 최선이라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놓아줄 때'라고 했다.

그 말이 성장 그래프에서 지금의 점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여기까진데 다음엔 더 잘할 거야. 지금은 이게 최선!'하며 경쾌하게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그 마침표가 무수히 이어지면 괜찮은 성장 그래프가 나올 거라고 이번 주 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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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의 내가 행복해야 회사 밖의 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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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와우 모먼트

많은 영역이 직감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신뢰도 선형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어떤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고 계속 쓰게 되는 순간을 와우 모먼트라고 말한다. 이 공식은 디지털 제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험에 존재한다. 고생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