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이번 주에 생일이 있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평소에 생각하기를, 앞으로 나이는 더해질 일만 있고 줄어들 일은 없는데 계속 슬프게 생각해 봤자 지는 게임이다,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길 그만두자 이렇게 마음을 먹어왔다. 그렇긴 했어도 생일이란 센치해지기 마련인 건지, 또 그새 그걸 유튜브 알고리즘이 눈치챈 건지 “나답게 잘 사는 40대가 되고픈 2030에게” 를 추천해 주길래 물 흐르듯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은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황선우 작가, 김하나 작가가 나온 회차였다. 새로운 삶의 레퍼런스를 찾는다는 취지에 맞게 내가 상상해 온 나이 들어감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몇 가지 말들이 콕콕 박혀 옮겨온다.
- (나이 드는 것에 관한) 환상을 깨시라. 40대가 되기 전에 느꼈던 불안감이 실제 40대 되고 나서 느끼는 것보다 더 컸다고 생각한다.
- 40대 이후에 성장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계속 배워야 하며, 개인의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40대에는 스스로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쌓여, 나의 취향이나 노력의 방향을 좁혀가는 지혜를 느낀다.
막연히 고인물, 꼰대,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나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 같고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 이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노련함이니 하던 일만 계속하게 될 거란 따분함,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많은 것을 해보고, 더 높은 곳으로 부랴부랴 움직여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
그래, 이거 다 환상이다.
내 할아버지는 86세이다. 아직도 혼자 대학 병원에 점진을 받으러 가실 수 있을 만큼 정신과 신체가 건강한 편이시다. 검진 후에는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다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시냐고 되려 의사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자부심은 근거가 있다. 할아버지는 매일 6시 30분에 일어나셔서 1시간 동안 각종 스트레칭을 하시고 아침, 점심, 저녁은 정해진 시간에 드신다. 탄단지 균형이 맞는 식사를 고집하시고 게다가 간식은 꼭 견과류로 드신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손이 발끝에 닫는 유연성을 뽐내시며 이게 다 노력해서 만든 습관이라며 손주들에게 자랑하신다.
그래서 난 할아버지가 평생 이렇게 사신 줄 알았다. 근데 ‘나 이렇게 산 지 10년밖에 안됐어(그럼 76세)’ 하셨다. 처음에는 손이 발끝에 안 닿았는데 하다 보니까 되더라, 브릿지 동작(무릎은 접고 누워서 엉덩이를 드는 동작)도 첨엔 못했는데 이제 30초는 버틴다는 말을 이어가셨다.
60세부터 해도 되는구나, 70세에 시작해도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처음 해본 것 같다. 오히려 희망차다. 그래, 인생이 얼마나 빡빡한데 젊어서 노력해 둔 걸로 평생 우려먹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계속 노력하고 시도해야지. 그게 당연하지.
이런 당연한 생각을 하니 나의 환상적인 두려움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10년쯤 하면 얼마나 더 잘하겠냐, 그럴 여지가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니 어떤 것도 늦지 않았고 어떤 것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