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면은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한때 우아한 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라는 포스터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고루한 단어를 골라 엄격하게 작성해야 할 것 같은 조직 문화를 매우 캐주얼하게, 캐주얼하다 못해 아예 마음에 콕콕 박히게 써서 모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몇 년이 지나서 우아한 형제들의 ‘배민다움’에 대한 정의는 꽤 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문장이 있다. “나는 일이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업무는 항상 연속적이고 내 앞에도, 내 뒤에도 누군가가 일을 할 것을 고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맞는 말이라고 속으로 곱씹었다. 생각해 볼수록 너무 맞는 말이지만, 잊을 때가 많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내가 개선하려는 화면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좋을까, 어떤 문제를 해결할까, 문제 해결을 넘어서 어떤 감동까지 줄 수 있을까 고민에 휩싸였다. 이렇게 깊게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런 나 자신이 꽤 괜찮은 디자이너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 화면을 다른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다가 말이 너무 장황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자각했다. “아, 내가 만드는 화면은 퍼널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집중하고 있는 화면은 가입 과정이라는 긴 퍼널 안에 한 토막을 차지할 뿐 사용자의 여정은 앞에도 길고 뒤에도 길다. 하지만 나는 이 한 토막에만 몰두하다 보니 앞뒤를 다 잘라먹고 내가 맡은 것 분량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퍼널을 긴 영상으로 비유하자면, 막힘없이 스르륵 넘어가야 하는데 한 프레임에서만 체할 것 같이 과한 화면 구성을 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코스 요리를 먹는데 그냥 시원한 물을 마시면 되는 대목에서 물 대신 캐모마일을 다려내고 꽃까지 올려서 앞뒤 요리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잔에 서빙한 꼴이랄까.
지금 그리고 있는 화면이 항상 사용 여정 어딘가에 있단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피그마 파일이 폴더별로 쪼개져있다고 경험이 분절적인 것이 아닌데, 자꾸 전체 제품의 리듬을 놓친다. 한 화면에서 세상을 구하려고 하지 말자. 모든 곳에서 조금씩 갈고 닦아 최선을 만들자.
마침,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이번 주 스타트업 바이블에서 더 용기를 얻었다. ‘이 세상에서 한 방으로 크게 성공하는 대박 성공은 절대로 없다.’ 마찬가지로 한 화면을 잘 만들었다고 전체 제품이 좋아지는 한 방은 절대로 없다. 반대로 한 퍼널 완전히 잘못했다고 제품이 무너지는 경우도 없다. 그냥 포기하지 말고, 전체의 리듬 안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갈고 닦는 것이 디자인이 만들 수 있는 복리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