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똑똑함이라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다.

제품 전략을 세우기 위해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한 자료, 빈틈없는 경쟁사 비교를 몇 페이지에 나눠 설명을 듣고 있으면 너무 많은 숫자와 그래프에 압도당해 그걸 잘 이해하는 사람이 똑똑한 디자이너인 것 같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래서 해결할 문제가 뭔데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똑똑한 디자이너다.

문제를 단순하게 만드는 일을 디자이너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비즈니스 사정과 달리 고객이 원하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가격은 저렴하고, 배송은 빠르고, 화면은 단순한 걸 원한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니즈에 집중하면 제품이 과도하게 복잡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단순한 니즈와 반대로 제품이 복잡해지는 경우는 이런 상황이다. 우리가 맺은 계약이 이렇게 되면, 법률 해석이 이렇게 바뀌면 등 서비스의 성공 여부에 조건이 달리는 경우다. 이런 팀에서 디자이너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인 요구받는데 그러면 당연히 제품은 복잡해진다. 미래를 위해 현재 기능이 없지만 탭을 하나 마련해 둔다거나, 이해를 위해 뭐만 하려고 하면 다이얼로그 띄워서 설명한다거나, 심지어 그 설명이 한 줄로 끝나지 않고 3~4줄이 되거나 하는 식이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갑자기 대자본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우리 서비스가 의지하고 있는 외부 기술사가 가격을 올린다면 같은 모든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가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경우다. 이 경우 제품은 물론 팀의 업무도 복잡해진다. 팀의 업무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제품엔 핵심 가치가 아닌 (계속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부수적인 가치가 추가되고, 팀원들은 우리 제품에 성공 전략에 대해 다 다른 생각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증가한다.

느꼈겠지만, 이런 가정은 불필요할 때가 많다. 불필요한 가정을 걷어내고 우리 제품의 성공을 견인하는 가장 위험한 가설 하나를 검증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불필요한 가정인지 판단하고 걷어내는 건 분명히 어렵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제품은 열 배는 복잡해지기 때문에 꼭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솔루션을 내는 것이 똑똑한 디자인이라는 환상을 지우고 더 단순한 솔루션을 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솔루션이 허무할 정도로 단순해 보여도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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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

시들함은 해롭다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즐겨보는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소개해서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시들함’이라는 마음 상태를 정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력을 찾는 방법을 말한다. 마침, 당시 내 감정 상태도 딱 그러해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시들함은 다음과 같다. *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으니 축복받은 셈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