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팀과 재즈 밴드 팀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건 PM이 해줘야 하는 일이죠’, ‘피드백은 좋지만 이건 디자이너가 결정할 분야인데요’ 같은 이야기다. 무슨 촌스러운 얘기냐고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이런 이야기는 자주 들린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 PM에게 ‘문제를 발견하면 문제만 이야기해달라, 솔루션은 디자이너들이 내보겠다’라며 디자이너와 일하는 법을 설교한 적이 있다. 반대로 PM으로부터 '디자이너가 PM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정의는 PM의 역할'이라며 디자이너가 PM 고유의 권한을 빼앗아 가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건 PM과 디자이너만의 문제는 아니다. IT 제품은 여러 사람이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런 교착점은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역할과 책임에 대한 문제가 튀어나왔을 때 일반적인 반응은 두 가지이다. 우선 각자의 성역을 공고하게 하려는 방식이 있다. 이런 경우 각자의 역할, 즉 어디까지 PM의 역할이고 어디까지 디자이너의 역할인지, 어떤 방식을 통해 엔지이너에게 전달되어야하는지 세세하게 정한다. 그런 팀에서 좋은 팀원은 각자의 역할에 걸맞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다른 유형은 고마워하는 것이다. 이런 팀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덕분에 알게되었다고 반응한다. 디자이너, 개발자, PM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입각해서만 의견을 내지 않고 제품에 대해 다방면 아이디어를 낸다. 이런 팀에서 좋은 팀원은 분야와 역할에 관계없이 제품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다.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 팀과 재즈 밴드 팀이다. 각자의 역할에 맞춰 일하는 팀은 각자의 악보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팀이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라인만, 피아노는 피아노 라인만 연주하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두 번째 팀은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 밴드에 가깝다. 피아노가 멜로디를 치면 기타가 새로운 멜로디를 제안하고 드럼이 슬금슬금 비트를 얹다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갑자기 베이스가 리듬을 주도할 수도 있겠다.

불확실성이 강한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팀은 재즈 밴드 팀이다. 오케스트라 팀의 사람들은 월권을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의견을 검열하거나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면 무심한 태도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재즈 밴드 팀에서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관련되지 않은 일(예를 들면, 각자의 권한을 따져 말하는)에 피로를 덜 느끼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팀은 재즈 밴드 팀이다. 그것이 성공하는 제품을 만드는 팀 문화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재즈 밴드 팀에서 더 인간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역량은 무척 다르다. 디자이너라고 모두 같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개발자, PM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역량을 디자이너의 R&R, PM의 R&R에 맞게 재단하고 그 안에서만 충실하는 것은 무엇보다 비인간적이다. 우린 매뉴얼에 맞춰 일하는 기계가 아니기에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시너지를 내는 게 더 인간적인 모습 아닐까 생각한다.

직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나는 이런 강점을 가진 팀원인데 내가 어떻게 우리 팀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울까’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것. 그게 더 재밌게 일하는 팀이라고 믿고, 강력한 문화를 가진 제품팀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나는 음악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한 비유라고 너그럽게 넘어가주자. 말은 이렇게 해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선 감동받고 오곤 한다.

Read more

요즘 일에 대한 생각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다. 하도 여러 셰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은 에드워드 리 셰프다. 어떻게 사람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지. 유퀴즈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요리를 퍼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여기로 옮기고 저걸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하는 마음으로 본다고, 요리 앞에선 어린아이가 된다고

시들함은 해롭다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즐겨보는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소개해서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시들함’이라는 마음 상태를 정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력을 찾는 방법을 말한다. 마침, 당시 내 감정 상태도 딱 그러해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시들함은 다음과 같다. *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으니 축복받은 셈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