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에서 한 생각들

1.

퇴근길의 마음을 읽었다. 휴가지에서는 에세이만 한 것이 없고 언제나 나의 선택은 이다혜 작가와 하루키 언저리에서 결정된다. 부디 이 작가들이 매해 책을 써주길 빌어본다.

노는 김에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면 노는 시간도 일이 된다. … 이른바 일의 연장으로서 인간관계가 여가 활동에도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업계를 떠난 뒤에도 업계 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관계인가? 그렇지 않다면 일을 그만두고 남는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가?”
- 휴가는 휴가다워야 한다.

매일 투자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육체적 신체적 건강)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흘러 나가듯 오고 가는 사람 중에서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들 오게 하고 싶고 가지 않게 하고 싶은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나를 웃게 할 취향 미래를 불안하지 않게 할 저축(을 비롯한 자산)

다른 모든 것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지만 나 자신이 없으면 세계가 사라진다. 내가 나를 홀대하기를 멈추기
- 이게 다 외로움 때문이다.

2.

일을 완전히 빼고 싶던 여름휴가였다. 의도적으로 모든 슬랙 알림을 끄고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사 준비, 집 알아보기, 팀 이동을 겪은 최근 몇 주였다. 그래서 이번 휴가의 목적은 단 하나, 다시 열심히 하고 싶은 에너지를 충전하기였다. 근데 위와 같은 에세이들을 읽어버렸으니, 일보다 내가 더 중요하구나! 생각해 버렸고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적당히 하고 싶어져 버렸다. 허허. 근데 그게 나쁜가. 오히려 더 나을지도. 책에서 읽은 구절처럼 말이다.

‘잘될 일만 열심히 하지 않았고, 안될 법한 일도 대충 하지 않았다. 30년 차 프로페셔널의 진지한 헌신은 그런 것이다. 이유를 따질 시간에 주어지는 일을 하기. 영광도 영원하지 않지만, 실패 역시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진지한 헌신은 성공이나 실패와는 관계없다.’

이런 마음이라면 꽤 마음 편하게 또 적당히 열심히 살 수 있을지도. 그렇다면 이번 휴가의 목표는 다 이룬 것일지도.

3.

우리 부부는 여름휴가만큼은 휴양지를 고수한다. 이 전통은 3년 정도 되었다. 호텔이나 리조트에 콕 박혀서 수영장 앞 선베드에 누워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일, 어제 수영장에서 본 가족들을 오늘 조식을 먹으면서 또 봤다고 내심 반가워하는 일, 유난히 멋스럽게 입고 다니는 커플의 매일 달라지는 수영복을 보며 속으로 몇 벌을 가져왔는지 세어보는 일. 이런 것들로 수다를 떨고 책을 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잔다. 그 덕에 올해도 어깨는 화상을 입은 듯하다.

이번엔 유난히 더 건강하게 보낸 것 같다. 요즘 알콜을 줄이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히 여행지에 와서 마시는 맥주도 줄었고 그러다 보니 아침에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게 되었다. 뒤로 갈수록 스트레칭만 했지만. 또 새로운 변화는 종이책을 들고 오지 않은 첫 여행이라는 점이다. 매번 대체 몇 권을 들고 가냐, 막상 가서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고 실제로 가져갔던 책이 모두 흥미가 떨어진 사고도 발생했다. 올해는 팔마 덕분에 부담이 없었고 3-4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욕심을 덜어내니 훨씬 여유로운 여행이 된 것도 변화다. 동남아에 오면 너무 당연히 지켜야 하는 법칙처럼 1일 1마사지를 해야 한다, 혹은 휴가만큼은 평소 삶에 대한 보상이니 조금 사치스러워도 무리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런 욕심을 내려놓았다. 아침에 바삐 조식을 챙겨 먹고, 수영장에서 야무지게 놀다가, 부랴부랴 시간 맞춰 마사지 샵에 가고, 평이 좋은 식당에 미리 가야 줄을 서지 않으니 빠르게 움직이고 타이밍 맞게 해변에서 일몰을 보는 것을 내려놓고 시간이 안 맞으면 마사지도 안 받고, 근처에 있는 식당과 적당해 보이는 바에 가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이게 휴가지.

어느 패션모델이 그랬다. 시크한 패션이란 팔찌를 하나 더 하고 싶은데 하지 않는 것이라고. 시크한 여행도 이런 것이 아닐까 좀 멋진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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